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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주름

눈이 멀어버리거나 혹은 먼 채 하거나...(feat.눈먼 자들의 도시)


눈먼 자들의 도시
-저자 주제 사라마구 

 

 

어느 순간 눈이 멀어 앞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게 나 혼자만이 겪는 고통이 아니라면.. 서로 같은 처지에 도움도 바랄 수 없게 된다면 과연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진짜로 눈이 멀어버렸을 수도 있지만 보여도 일부로 눈을 먼 채 한다면 어떤 기분이 드는가?

주제 사라마구의 장편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를 보았다. 저자의 소설은 처음 읽는데 흥미로운 구성과 전개로 인해 깊은 몰입감을 준다. 문체가 인물 개개인이 느끼는 감정을 묘사하거나 놓칠 수 있는 관점들을 짚어주는 등 디테일해서 글의 이해도를 높이지만 자칫 늘어진다는 느낌도 있어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초반 설정 자체가 굉장히 파격적이라고 생각했다. 소설은 도로 한가운데 운전자가 눈이 멀어버리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일반적으로 눈이 어둡게 보이지않는 것과 다르게 눈이 하얗게 멀어버린다. 생과사의 기로, 가시적인 부분이 가장 중요한 운전이라는 요소를 도입함으로써 절망과 공포 아찔함 등의 감정들을 다른 이들로 하여금 줄 수 있도록 잘 짜인 부분이다. 이로 인해 소설의 시작과 끝을 막힘없이 읽어나갈 수 있었다. 

 

처음 눈먼 자의 시작으로 백색질병은 빠르게 전염된다. 그리고 이들은 수용시설에 갇힌다. 그들이 나오지 못하도록 그 시설 주위에는 군인들이 배치해있다. 도망자를 바로 사살할 수 있도록.. 추가적인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하는 다분히 이성적이면서 잔인하고 씁쓸한 부분이었다

 

이보다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 그게 있었다면 방법은 뭘까?
스스로에게 되물어봤지만 나 또한 쉽사리 답을 내릴 수 없었다 

수용시설은 질서를 유지하려하지만 쉽사리 되지 않는 불규칙한 소사회를 구성한다. 한정된 공간, 한정된 식사량 그리고 늘어나는 감염자
질서를 유지하려하는 자들과 이를 파괴하고 식량이라는 권력을 쥐고 휘두르는 자들 간의 다툼으로 이어진다. 눈이 안 보이는 사회에서 식량은 돈 따위는 비교할 수 없는 가치가 된다. 무법이 난무하는 불규칙한 소사회에서의 갈등은 극을 이끌고 몰입하게 만드는 요소다.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인간의 모습은 이곳에서는 인생의 밑바닥보다 더 아래로 흘러가며 삶의 의미를 다시금 새롭게 정의하기에 이른다.


때론 모르는 것이 약이 될 때가 있다. 되레짐작은 가지만 눈으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다가오는 감정의 고통을 덜하다. 그만큼 시각이라는 요소는 대단한 부분을 차지한다. 공간은 먹고 자는 동시에 화장실처럼 사용되기도 하며 하루의 대부분을 갇혀 지내야 한다. 눈으로 보였다면 정신적으로 더욱 견디기 힘들지 않았을까.

 

책을 읽으면서 상상되는 모든 요소들에 나를 대입해보았다. 나라면 견딜 수 있었을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래도 살고자 어떻게든 버텼을 것이다. 다만 반쯤 미쳐버리지 않았을까...

소설은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갈등의 요소를 넣었다. 식량을 약탈한 권력자들이 행패, 눈이 멀어버린 도시에서 살기위해 발버둥 치는 요소, 내 집이 내 집이 아니게 된 상황. 그럼에도 주요 인물들은 이를 헤쳐나가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눈이 보이는 한 인물이 게임 체인저로써 퀘스트를 하나씩 깨내며 완수해나가기에 이른다.

눈이 보이는 의사의 아내. 이 인물이 없었다면 소설을 이끌어가기가 참 힘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그만큼 의사의 아내가 차지하는 비중은 남다르다. 작가는 의사의 아내로 하여금 눈이 보이는 것도 사실은 눈이 보이지 않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으며 때론 그보다 더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가장 심하게 눈이 먼 사람은 보이는 것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은 위대한 진리예요"

"우린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볼 수는 있지만 보지는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눈먼 자들의 도시 중에서

 

 

눈이 보이건 보이지 않건 우린 눈이 먼 세상에 살고 있다. 겉으로는 보이지만 어떤 복잡 미묘한 관계 속에서 스스로 눈을 멀게 만드는  현대 사회를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이 멘트가 소설이 말하는 주된 의미이지 않나 싶다. 보고싶은 것만 보는 세상이다. 소설 속 사람들은 눈이 보이지 않아 여러 가지 이유로 결국 스스로를 가둬둔 채 산다. 현실도 별반 다르지 않다. 빠르고 복잡하게 흘러가지만 우리 역시 스스로를 가두고 있다. 필터 버블에 갇혀 버린 세상. 그게 강제적이건 자유의지든지 중요하지 않다. 소설처럼 우린 지금도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살고 있는 건가? 나역시 눈이 멀고 있는 건 아닌지 아니면 멀어버린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